가족과 마지막 인사까지 한 나의 병명은 '한랭응집소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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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마지막 인사까지 한 나의 병명은 '한랭응집소병'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3.09.04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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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수혈로 일상 붕괴…심근경색·담석증 등으로 잦은 '생사고비'
"내가 죽어도 그 누가 '한랭응집소병'을 알까 싶어 인터뷰 나서"

한랭응집소병은 적혈구 파괴가 지속·반복되는 극희귀 자가면역 혈액 질환이다. 체온보다 조금만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한랭응집소라는 자가항체가 적혈구와 결합해 비정상적으로 적혈구가 파괴되는 현상인 '용혈'을 촉발한다. 때문에 환자는 만성용혈로 인한 극심한 빈혈과 피로, 호흡곤란, 혈색소뇨증, 말단 청색증, 혈전성 합병증 등으로 응급 상황을 맞게 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한랭응집소병 환자 10명 중 4명은 진단 후 5년 이내 사망하며, 진단 후 생존 여명은 평균 8.5년에 불과하다. 유병율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발병율이 극히 낮은 100만 당 1명꼴이다. 때문에 한랭응집소병은 극희귀질환으로 분류된다. 해외 논문에 보고된 발생률과 전문가 의견에 따라 국내에는 약 100여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환자들은 질환 자체가 워낙 희귀하다 보니 증상 개선을 위해 한랭응집소병에 허가되지 않은 약제를 투여하거나 수혈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자료에 따르면 한랭응집소병 환자의 64%가 중등도~중증 빈혈을 경험하며, 환자의 40-50%는 수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상반기 국내에 한랭응집소병을 치료하는 약제의 허가가 이뤄졌다. 그러나 한랭응집소병은 아직 국내에서는 질병 코드 조차 없다. 상위 코드인 자가면역성 용혈성 빈혈조차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질병 코드 분류 등록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한랭응집소병을 앓는 윤경숙 환자와 인터뷰는 8월 24일 진행됐다. 32도가 넘는 바깥 날씨에도 그의 옷은 겨울에나 입을 법한 스웨터를 두겹으로 겹쳐입은 차림이었다.
한랭응집소병을 앓는 윤경숙 환자와 인터뷰는 8월 24일 진행됐다. 32도가 넘는 바깥 날씨에도 그의 옷은 겨울에나 입을 법한 스웨터를 두겹으로 겹쳐입은 차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랭응집소병으로 투병 중인 환자와의 인터뷰가 뉴스더보이스와 성사됐다.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인터뷰에 나선 윤경숙 환자(69세)는 "내가 죽어도 그 누가 한랭응집소병을 알아줄까 싶다. 하지만 투병하는 다른 환자들을 위해 병을 알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힘든 병이지만 신약도 나왔다고 하니까 환자들이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랭응집소병으로 여러차례 생사를 넘나들었던 윤경숙 환자는 2016년 진단 이후 허가되지 않은 경구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를 투약하거나 수혈을 받으며 질환을 버텨내고 있었다. 지금은 수혈로 생을 이어가고 있지만 "차도는 없고 생명을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자신의 상태를 전하기도 했다.

급격히 떨어지는 헤모글로빈수치로 인해 극심한 빈혈을 겪는다는 윤경숙 환자와의 인터뷰는 그의 '긴급한 수혈'을 이유로 한 차례 연기된 이후 지난달 24일 오후에서야 진행됐다. 이날 역시 새벽 1시까지 수혈을 받아야 했던 그의 상태는 몹시 힘들어 보였다. 걱정하는 기자에게 "오늘 수혈을 받아 앞으로 2주는 살 만한 상태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지만 그의 낯빛은 너무 노랬고, 인터뷰 하는 사이사이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런 상태에서도 윤경숙 환자는 인터뷰 마무리에 꼭 전하고 싶은 한 마디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높으신 분들에게 이 병에 대해 전해 달라. 그리고 환자들의 아픔을 많이 고려해 달라고 전해달라. 이게 하고 싶은 말이다."

다음은 윤경숙 환자와의 일문일답.

-언제 처음으로 한랭응집소병을 진단 받았나?

2016년 질환을 최초 진단받았다. 자영업을 하고 있던 중 손님들이 나를 보고 손이 너무 노랗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할 정도로 황달 증세가 심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가기엔 두려움이 앞서 질환을 방치했다. 그 당시 매일 너무 피곤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2003년 자영업을 시작하고서 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다.

기회가 되어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됐는데 2박 3일 내내 너무 몸이 아파 서울로 올라와 바로 지역에 있는 병원 응급실에 가게 됐다. 이후 채혈, 소변검사, 엑스레이, 골수암 검사 등을 받고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골수암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듣도 보도 못한 한랭응집소병이라는 병명을 들어 당황했다. 너무 희귀해 약도 없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들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채혈, X-ray 등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이렇다할 치료는 없었다.

당시에 백내장이 왔는데 수술실이 차가워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하고 검사만 이어가다 스테로이드 제제, 면역 억제제로 치료를 받게 됐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다. 2년 정도 다니다 병원을 옮겼지만 국내 치료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에도 스테로이드 제제, 면역 억제제로 치료를 받았지만 혈당 수치가 너무 높아졌다. 기저질환으로 당뇨병이 있는데, 스테로이드 제제를 맞고 나니 혈당 수치가 400~500을 넘고 몸이 너무 힘들어서 약을 끊었다.

-한랭응집소병으로 수혈은 언제부터 받게 됐나?

2018~2019년 정도부터 수혈을 받다가 병원을 다시 옮긴 뒤 수혈 빈도가 더 잦아졌다. 두 달에 한 번 주기로 수혈을 받았는데 최근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수혈을 받고 있다. 보통 2팩씩 수혈을 받았는데 7월에는 4팩으로 늘어났다. 7월에 그렇게 많이 수혈을 받았는데도 8월에 피검사를 하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7.6에 불과했다. 수혈을 아무리 자주, 많이 받아도 항상 헤모글로빈 수치는 8점대를 넘지 못하고 6점대~7점대 정도다.

-한랭응집소병으로 인해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한 번은 심장 통증이 있어 응급실에도 여러 번 갔는데 당시 진료를 보셨던 분이 위경련이라 진단해 주셨는데 통증이 지속됐다. 그러다 너무 심장이 아파 응급실에 갔는데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 너무 급했던 상황인지라 수술실로 가지도 못하고 응급실 바로 옆 처치실에서 수술을 받았다. 깨어났을 때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났을 것이라며 다른 응급실 의사분께 혼났다.

또 한 번은 대학병원 정기검진일을 하루 앞두고 통증이 너무 심해 응급실에 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너무 아픈데 받아주지를 않으니 이때 주변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게 됐다. 그 병원 진료 기록이 없는 상태에서 급하게 MRI를 찍고 담석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석증도 한랭응집소병으로 인해 깨진 피가 고이면서 생길 수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담석증 수술만 8번을 받았는데, 한번은 3일 연속으로 받은 적이 있다. 이때 수술 4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었고, 그때만 해도 임종이 2시간 남았다고 해서 가족, 지인들을 불러 면회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다 가까스로 건강이 호전돼 일반 병실로 옮겼다.

-고비를 넘기고 난 이후 치료는 어떻게 달라졌나?

치료제가 없어서 이전과 똑같이 임시방편인 수혈만 받았다.

-진단 이후 치료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현재 병원 복지 담당 부서를 통해 의료급여 수급권자로 등록해 치료를 받고 있다. 평생 번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 다 갖다 바쳤다. 처음 진료를 받을 때에는 치료비를 30%만 내면 된다고 했는데, 나중에 질환 코드가 안 맞는다고 전액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하면 치료비가 200만 원 이상 나왔고 연간 천만 원 대의 비용이 나왔다.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되면서 노령연금을 포기했으나 이후 치료비 부담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시간 동안 질문에 답하며 윤경숙 환자는 가쁜 숨을 자주 내쉬었다. 전날 수혈로 컨디션이 좋다는 그의 목 빛깔은 황달이 온 것처럼 노랬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시간 동안 질문에 답하며 윤경숙 환자는 가쁜 숨을 자주 내쉬었다. 전날 수혈로 컨디션이 좋다는 그의 목 빛깔은 황달이 온 것처럼 노랬다.  

-이 병으로 인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날씨가 더워도 문제, 추워도 문제다. 한랭응집소병이라고 해서 더위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니다. 더위는 일반인과 똑같이 느끼는데, 에어컨 등으로 인해 온도가 낮아지면 증상이 심해지기 때문에 옷을 마냥 얇게 입을 수가 없다. 겨울에는 특히 더 힘든데, 겨울이 되면 수면 잠옷과 수면 양말까지 몸을 꽁꽁 싸매고 지낸다. 손끝, 발끝 등의 부위에 저림이 있고 가게 일을 할 때도 계속 털옷 등을 입는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고 피가 모자랄 때는 조금만 걸어도 심장이 부서지는 느낌, 심장에 누가 고춧가루를 뿌린 듯 한 느낌으로 쓰리고 아프다. 또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지면 귀에서 심장이 뛰는 듯한 ‘푹푹’ 소리가 들린다. 이명인가 싶어서 검사했는데 이명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수혈하고 나면 귀에서 들리던 소리가 희미해지고, 수혈을 2팩 이상 받고 나면 귀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다.

-한랭응집소병을 앓고 있다고 하면 주변 반응은 어떤가?

사실 이야기해도 일반인들은 이 질환을 모르다 보니, 질환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환자라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 항상 화장도 하고 정돈된 상태를 갖추려고 한다. 친한 지인들에게 알렸을 때는 “무슨 그런 병이 있어”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한 질환이었기 때문이다. 병명을 알고 나서 주변에서 정말 많이들 도와주셨다. 가게에 오신 손님들도 잘 챙겨 먹으라며 돈을 더 내고 가시고 반찬이며 물건이며 많이들 갖다 주셨다.

-이 질환이 아니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지?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아무 데도 못 간다. 딸이 여행을 가자고 예약했다가도 몸이 아파서 못 갔다. 건강했을 때는 자전거를 잘 타서, 딸이 운동하라고 자전거도 사줬는데 이제는 자전거도 못 탄다.

-이 질환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너무 힘든 병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질환이다. 내가 죽어도 그 누가 한랭응집소병을 알아줄까 싶다.

-최근 한랭응집소병 치료제가 국내 허가를 받았다. 신약에 대한 기대감이 높을 것 같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해 출시됐겠지만, 아무래도 신약이다 보니 갖게 되는 두려움이 있다.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힘든 병임은 틀림없지만, 신약이 나왔다고 하니까 희망을 품으셨으면 좋겠다. 병의 완치는 어렵겠지만 신약을 통해 환자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인터뷰 마무리다.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높으신 분(정부 관계자)들 중에서는 아직 이 질환에 대해 모르는 분이 여전히 많으실 것으로 생각한다. 한랭응집소병은 겪어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알 수가 없다. 병원을 너무 많이 거치면서 스스로도 지친 상황이다. 너무 힘든 병임을 알아주시고 환자들의 아픔을 많이 고려해 달라고 전해달라. 이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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