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링, 그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상태바
미러링, 그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 문윤희 기자
  • 승인 2024.04.02 0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먼저 이번 글 제목에 대한 설명부터 한 토막.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란 의미로 제목을 조금 고급지게 표현하기 위해 굳이 영어 표현을 써 보기로 했다. 그래서 선택한 단어가 미러링(mirroring)이었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맞는지를 찾아보기 위해 단어를 검색했다. 아차 싶었다. 미러링은 '반영하다, 비추다' 등의 본래 뜻과 함께 여성혐오적 단어로 최근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먼저 나의 무지에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이토록 비유적인 단어를 그토록 한정된 의미로 구속시킨 현 세태에 한숨이 나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아이가 엄마에게 보인 몇몇 사례를 적어보고자 했으나 어제의 일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 글을 싣는다. 아이는 잠들기 전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토요일 내내 미세먼지로 밖을 나가지 못한 탓에 아이는 일요일 오후 신나게 동네 공원을 뛰어다녔다. 시간으로 치면 정확히 3시간 정도였다.

정말 신이 나게 뛰어 놀아서인지 아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알았다하고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목욕 후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됐다. 아이는 침대로 가면서 다시 다리가 아프다며 엄마에게 다리 마사지를 주문했다. 10분 정도 주물러 주면 잠들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아이의 다리를 주물렀다.

아이는 엄마의 마사지가 좋았는지 "내가 잠들 때까지 해줘요"라고 요구했다. 나 역시 몇 분이나 더 걸릴까 싶어 그러겠다고 했다. 생각없이 주물러주다 보니 내 손이 아팠다. 시간을 보니 대략 20분이 흘렀다. 아이는 마사지가 주는 나른함에 잠들 것이라는 엄마의 순진한 예상을 깨고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빨리 재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이의 말재간을 들으며 같이 수다를 떠느라 자라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유진이는 6살이 된 지금도 모래놀이를 좋아한다. 저렇게 한참을 집중하다 급 술래잡기로 놀이를 전환하는 전천후 장난꾸러기다. 
유진이는 6살이 된 지금도 모래놀이를 좋아한다. 저렇게 한참을 집중하다 급 술래잡기로 놀이를 전환하는 전천후 장난꾸러기다. 

"이제 아픈 거 다 풀렸을 꺼야. 그만 잘까?"

"아냐, 엄마. 아직 아파. 더 주물러 줘."

"그럼 딱 5분만 더 주물러 줄께."

"안돼. 내가 잘 때까지 주물러줘."

"그럼 딱 10분만."

"안돼~. 계속해~. 내가 지켜볼꺼야. 내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

"응? 그런 말투는 어디서 듣고 따라하는 거야?"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에는 웃음이 나왔다. 어른의 말투 그것과 흡사한 어투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평소 내가 하지 않는 말투를 하니 신기하기도 웃기기도 했다. 그러다 순간 어린이집의 풍경이 그려졌다. 20여명의 아이가 어울리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각 가정에서의 대화가.

아차. 싶었다. 우리 아이가 그려낼 나의 모습이. 순간 얼굴이 화끈 거렸다. 가끔 유진이는 엄마가 화날 때의 모습을 (엄마 놀릴 때)곧잘 따라하는데 그 말투를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에게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자는 내내 머릿속에 아이가 따라했을 내 모습이 생각나 이불 킥이 절로 나왔다. 내심 아이를 키우며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여겨왔다. 나쁜 기분이나 감정을 아이에게 전달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또 아이를 화풀이 대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불쑥 나오는 화를 참지 못하는 내가 생각났다. 아이에게 화를 내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는 그 순간의 나를 놓치지 않았고, 투영하면서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거울이 되었다. 아이의 본보기,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부모라는 존재의 무게감이 한 순간 밀려 들었다.  

내 밑바닥까지 보게 만드는 육아라는 과정에서 나는 아이에게 온전히 모범적인 모습만을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다독인다. 엄마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고, 괜찮다고.

그리고 항상 육아선배들에게 나의 고민 상담 끝에 듣는 위로의 단어를 함께하기 위해 전한다. 고진감래(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 아무리 힘들고 고단한 일상의 무게도 아이의 웃음 한방이면 풀리는 부모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오늘 하루도 고생하신 엄마 아빠의 하루에 박수를 보내드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